미련으로 시작했습니다

첫 제품을 배포하고 두 달, 도록 회고

지난 6월, 도록(dolog)의 첫 제품을 배포했습니다. 두 달이 지나 회고를 쓰려고 앉았는데, 정리하고 싶은 것이 기능 목록이 아니었습니다. 그 사이 저는 이 일을 계속할 이유를 처음부터 다시 따져 봐야 했습니다. 따져 보고 나서야, 왜 하는지가 전보다 선명해졌습니다. 그 이야기를 적습니다.

미련이라는 대답

지난겨울부터 올여름까지 창업 부트캠프를 다녔습니다. 거기서 배운 것을 요약하면 두 가지였습니다. 수익 모델이 중요하다. 큰 시장을 찾아라. 배운 대로 아이템들을 저울에 올렸고, 저울질이 끝났을 때 손에 남아 있던 것은 시장이 작고 수익 모델부터 새로 증명해야 하는 도록이었습니다. 왜 이 아이템이냐는 질문에 오래 고민해서 내린 답은, 전략이 아니라 미련에 가깝다는 것이었습니다. 11년 동안 작가의 데이터를 다루면서, 정작 작가가 자기 몫으로 가져갈 수 있는 도구는 없다는 사실이 계속 마음에 걸렸으니까요.

미련으로 시작한 일이라서 오히려 전략은 명확해졌습니다. 큰돈이 도는 시장이 아니라면 오래 버티는 구조로 만들어야 합니다. 기술도 운영도 잘 설계하되, 최대한 가볍게. 그리고 무엇을 만들지 망설여질 때마다 기준은 하나. 작가에게 친절한 도구인가.

아트니스

도록을 만들던 중에 알게 된 서비스가 있습니다. 아트니스. 작가가 자기 페이지를 만들고 작품을 아카이브하는, 도록과 같은 자리를 먼저 지키고 있던 서비스였습니다. 아이템을 정할 때는 존재를 몰랐습니다. 도록에 모시고 싶은 작가분들의 이름을 이따금 검색해 보곤 했는데, 언젠가부터 검색 결과 상단에 아트니스의 작가 페이지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들어가서 한참을 봤습니다. 작가 페이지 하나하나가 성의 있게 관리되고 있었고, 제가 도록에서 아직 못 한 것들이 이미 거기 있었습니다.

솔직히 흔들렸습니다. 이미 이렇게 하고 있는 팀이 있다면, 제가 따로 만들 이유가 있을까. 그래도 제가 무엇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인지는 만들어 봐야 안다고 마음을 다잡던 참이었습니다.

지난 7월, 아트니스가 서비스 종료를 공지했습니다.

기록이 갈 곳

저는 서비스를 접는 결정을 내려 본 적이 없습니다. 그 무게를 짐작만 할 뿐이고, 그 결정까지 그 팀이 무엇을 따져 보았을지도 알지 못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작가들 쪽에 있었습니다. 작가들은 몇 년씩 쌓아 온 기록을 다시 어딘가로 옮겨야 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온라인에 기록을 쌓는 일에는 원래 이런 위험이 따릅니다. 어느 서비스든 마찬가지고, 도록도 예외가 아닙니다. 기록을 쌓을 자리를 만드는 저에게, 이것은 남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서둘렀습니다. 기록이 흩어지기 전에, 작가가 자기 기록을 도록으로 옮겨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준비했습니다. 원하시는 작가분들이 건너오셨습니다. 도록에 남는 기록은 작가 본인이 쓴 것입니다. 다른 곳에서 작가를 소개하며 쓰인 글은, 그 글을 쓴 사람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옮겨 온 기록은 옮겨진 그대로 남지 않습니다. 남길 작품을 고르고, 사진을 다시 올리고, 무엇을 공개할지 하나씩 정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기록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일입니다. 그 당연한 과정이, 제가 미련이라고 불렀던 마음의 정체를 알려 줬습니다. 저는 작가의 기록이 주인을 잃는 게 싫었던 것입니다.

큰 시장이 아니라는 계산은 여전히 맞을 것입니다. 그래도 작가의 기록에는 안전하게 쌓일 자리가 있어야 하고, 작가가 원하면 언제든 자기 기록을 통째로 꺼내 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오래 버티는 비용 구조로 설계했고, 앞으로도 기준은 같습니다. 가볍게 만들어서, 오래가기. 작가에게 친절한 도구이기. 미련으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미련이 아니라 이유가 됐습니다.